편집자주 ; 울산 최고의 병원인 울산대병원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안정적 정규직인 간호사 10명 중 8명이 사직을 고민하고 있다고 답했다. 10명 중 1명은 자살충동을 느끼기도 했다. 고질적 인력부족과 열악한 노동환경이 주범이었다. 병원노동자는 대부분 가임기 여성인데 병원 환경은 임산부에겐 지뢰밭과 같다. 하위호봉직급은 정규직인데도 10년을 일해도 기본급 100만원 남짓을 받는다. <울산저널>은 4히에 걸쳐 울산대병원으로 출근하는 노동자의 노동을 관찰했다.
 
1. 간호사 10명 중 8명은 사직고민
2. 임산부에겐 병원 곳곳이 지뢰밭
-> 3. 10년을 일해도 월급은 100만원
4. 병원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노동자


오늘 아침 울산대병원 조리실 밥 짓는 노동자 이야기메뉴는 김치, 시금치무침, 고등어조림, 돼지고기가 들어간 미역국이다. 컨베이어 위로 밥그릇이 올라간 식판이 내려진다. ‘김아무개, 육류 섭취 금지’라고 적힌 이름표와 함께. 김치, 시금치무침을 담당하는 조리사 2명은 무사통과했다. 고등어조림도 통과다.


울산대병원 조리실

밥 짓는 노동자 이야기


그런데 국을 놓아야 하는 나희연 씨(42, 가명)는 갑자기 분주해진다. 고기를 먹을 수 없다니, 어서 돼지고기를 건져내든, 다른 국으로 바꿔야 한다. 이른바 맞춤형 환자식이다.


염분 섭취를 줄여야 하는 이아무개의 식판이 내려오면 김치 놓는 손이 바빠진다. 김치의 양념을 씻어내든, 다른 반찬으로 바꿔야 한다. 컨베이어는 멈추지 않는다. 울산대병원의 대표적인 하위호봉 기능직이 근무하는 조리실 풍경이다. <관련기사 3면>


LD근무조(오전 5시 30분~오후 3시)인 나씨는 새벽 5시 10분께 병원에 도착했다. 정시에 일을 시작하려면 늦어도 20분전에는 병원에 나와야 한다. 이미 조리실에는 D근무조(오전 4시 30분~오후 1시 30분)가 나와 있다. D근무조는 전날 E근무조(오전 10시 30분~오후 7시 30분)가 미리 다듬어 놓은 식재료로 아침 메뉴를 조리한다.


7시 20분부터 각 병동을 돌며 배식을 시작해야 한다. 배식에 주어진 시간은 30분. 30분 안에 본관 5개 병동, 신관 11개 병동을 다 돌아야 한다. 서둘러야 한다. 요즘은 밥이 늦는다고 욕을 하는 환자도 있다. 무엇보다 아침 배식이 늦어지면 점심이 늦어지고, 저녁도 늦는다.


2시간 안에 몇 백 인분의 음식을 조리해 식판에 놓는 준비까지 마쳐야 한다. 정한 시간까지 무사히 배식을 마치면 나씨도 아침밥을 먹는다. 역시 주어진 시간은 30분이다. 이마저도 배식이 늦어지면 제대로 확보할 수 없다. 서둘러 식판을 거둬서 설거지를 마쳐야 한다. 수백명의 식판을 씻고, 건조해서 점심시간에 사용하려면 시간이 빠듯하다.


이때쯤 되면 나씨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으로 흠뻑 젖는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온기가 조리실 전체를 채우고 있다. 조리실은 열을 내는 기기가 대부분이고, 기름 때를 씻어내려면 뜨거운 물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한여름이나 비가 오기 전처럼 습기가 높은 날에는 눈이 쾡해질 정도로 땀을 흘린다.


나씨는 “시설이 옛날보다는 좋아졌지만, 힘든건 여전해요. 기계 돌아가는 속도에 맞춰야 하니까 더 힘들어진 것도 있죠. 그런데도 우리가 단순 노무직이라서 하위호봉이라는거에요. 자기들이 내려와서 할 수도 없으면서…”라고 말했다. (3면으로 이어짐)


DSC08470.JPG

울산대병원 영양조리사들이 하위호봉 철폐를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 울산대병원분회


반쪽짜리 정규직 '하위호봉'

15년 일해야 정상호봉 대우


(1면에서 이어짐) 나희연씨는 울산대병원 조리실에서 14년째 근무하고 있다. 애초 그가 울산대병원에 들어 올 때는 파견업체 소속이었다. 2006년 병원 직영 계약직으로 바뀌기 전까지 업체만 세 차례 바뀌었다. 병원이 그를 직영으로 돌린 이유는 그편이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같은 해 보건복지부는 입원환자식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기로 했고, 관련 종사자를 직영으로 고용할 경우 식대에 가산금을 붙일 수 있도록 했다. 병원은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그동안 위탁으로 관리했던 조리사를 직영으로 돌렸다. 이때까지도 비정규직 신세였던 나씨는 비정규직보호법(기간제법)안이 만들어지면서 정규직이 될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병원이 하위호봉을 만들면서 반쪽자리가 되고 말았다.


영양조리사는 다른 하위호봉 보다 -4호봉이 더 많다. 또 -10호봉의 다른 하위호봉직은 1년에 2년씩 (-) 호봉을 감하지만, 영양조리사는 1년에 1호봉씩 감한다. 만약 두 사람이 각각 똑같이 -10호봉과 -14호봉으로 일을 시작하면 -10호봉은 6년차에 정상호봉이 되지만, -14호봉은 15년차에야 정상호봉이 된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병원에서 우리를 안고 싶어서 안은 게 아니고 수가를 받으니까 안은거죠. 병원은 돈을 더 받을 수 있으니까. 우리는 병원 수익 올리는 도구였던거에요. 그러니까 그동안 아무것도 모르던 우리가 지금 와서 우리 몫을 요구하니까 놀라는거죠”


나씨는 불평등한 고용관계도 문제지만 작업환경 개선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조리사 한 명이 근무하는 E근무조(오후 3시~11시)는 상시적인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 E근무자는 야간근무 중인 병원 직원들에게 간단한 야식을 준비하는 일을 한다. 직원들의 야식을 챙겨주고 조리실을 정리하는 모든 일을 혼자서 처리한다.


“막말로 혼자서 정신없이 정리하고 나오면 가스불을 껐는지도 모르고 나올 수도 있어요. 또 아무리 그래도 여자가 혼자 있으면 괴한이라 들이닥칠 수 있고, 넘어져 정신을 잃어도 다음날 새벽까지는 모르는거에요”


병원을 돌보는 보이지 않는 노동
“안하면 티 나지만, 하는건 티가 안나요”


손영희 씨(47, 가명)는 10년차 울산대병원 병동보조원이다. 병동보조원이 하는 일은 다양하다. 매일 아침 8시까지 출근하면 병동 데스크에 그날 할 일이 빼곡히 적혀 있다.


환자를 돌보느라 바쁜 간호사를 대신해 병원 내 약국에서 환자 복용약부터 마약류나 수액, 주사약까지 챙겨온다. 입원 환자들이 입을 환자복이나 이불을 정리하는 일도 손씨 몫이다.


오전에 약을 받아놓고, 환자복과 이불 등을 정리하는 일은 기본적인 일이다. 손씨의 하루는 이후부터 시작이다. 병원이 본격적으로 환자를 받기 시작하고, 의사가 회진을 돌면 순간순간 발생하는 ‘오더’를 처리해야 한다. 이때부터 병원에서 따로 지급한 휴대폰이 시시때때로 울리기 시작한다.


“여사님, 약 좀 타다주세요” “여사님, 이아무개 환자 검사 내려가게 해주세요” “여사님, OO병동 환자 이송 기사님 없어요” 등 갖가지 요구가 쏟아진다. 환자를 직접 처치하는 일을 제외한 대부분의 병동 업무가 손씨에게 주어진다.


지난해 1월 병원이 신관을 증축 개원하면서 손씨의 업무량은 더 많아졌다. 본관과 신관을 오가는 동선이 더 길어진 탓이다. 환자들이 그를 찾는 일도 잦아졌다.


“병원이 커져버리니까 환자들이 어디에 뭐가 있는지를 잘 몰라요. 그러니까 저를 찾는거에요. 노인들이 많다보니까 더 그런 것 같기도 해요. ‘무슨 검사실에 데려다 달라’ 그러면 내려가서 데려다 주고, 또 데리러 가야 하는거에요”


쉼 없이 병원 이곳저곳을 누빈다. 하지만 일을 하고 있다는 티가 나지는 않는다. 간호사가 일을 시작하기 전 필요한 약을 갖추고, 환자가 들어오기 전 준비를 해두는 일이다 보니 딱히 눈에 띄지 않는 탓이다. 집안에서 주부들이 하는 일과 같다.


“시간대마다 하는 일이 많고, 항상 빨리 걸어다녀야 하는 탓에 엄지발가락이 까맣게 멍이 들어버리는데도 티가 안나요. 그런데 안하면 티가 나요. 살림처럼. 어디 가서 생색도 못내고, 스트레스는 받고 그런거죠”


병원 노동자 누구나가 그렇듯 항시 위험에도 노출된다. 감염 환자가 입었던 환자복을 처리하는 일도 손씨가 해야 하고, 주사 바늘을 치우는 일도 한다. 급하게 일을 하다보면 주사 바늘에 찔리는 일도 다반사다.


“다행히 지금까지 병에 감염된 적은 없지만 항상 불안하죠. 집에 돌아가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온 몸을 다 씻는거에요. 가족들한테 혹시라도 영향을 줄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프.jpg

울대병원 10명 중 9명, “하위호봉 철폐”
2006년 비정규직보호법 이후 생겨난 ‘중규직’들


울산대병원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먼저 병원 노동의 대부분을 해결하는 간호사, 의료기사 등이 포함된 정규직 노동자. 다른 하나는 그림자 노동을 수행하는 병동보조원, 영양조리사, 환자이송전담 등 하위호봉 기능직 노동자. 마지막은 청소노동자와 같은 파견노동자다.


이들을 나누는 가장 큰 차이는 처우다. 정규직 처우를 100으로 보면, 하위호봉 노동자와, 파견노동자는 50~70% 정도의 처우를 인정받는다. 그나마 하위호봉 노동자는 정규직에 준하는 고용안정을 보장받는다. 하지만 파견노동자는 병원과 용역계약을 맺은 업체가 바뀔 때 마다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병원노동자의 분화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 노동자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시작됐다. 정부는 2006년 비정규직의 권익 보호를 위해 ‘비정규직보호법’을 제정했다. 2년 이상 고용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골자로 하는 법안은 정부 뜻대로 비정규직을 보호하지 못했다.


사업체는 꼼수를 뿌려 이른바 ‘중규직’으로 불리는 무기계약직, 분리직군 등을 신설했다. 고용은 보장하되 처우는 정규직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직급을 만든 것이다. 2006년 12월 우리은행이 분리직군 도입을 노사합의로 결정한 후 금융, 병원, 대형마트, 통신업체 등에서 잇따라 도입됐다.


당시에는 평가가 조심스러웠다. 고용안정을 얻어냈다는 긍정론과 저임금노동 고착화라는 부정론이 대립했다. 하지만 이제는 정규직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임금 수준 탓에 사실상 비정규직으로 분류된다. 고용노동부도 최근 정규직과 무기계약직은 다른 범주로 구분하고 있다.


울산대병원은 2007년 노사합의로 하위호봉 기능직을 도입했다. 하위호봉은 기능직에 고용된 계약직 노동자를 계약 2년 후 마이너스(-) 10호봉(영양조리사 -14호봉)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다른 처우는 정규직에 준하는 수준이지만, 기본급이 현저히 낮다. 최저임금보다도 낮을 경우 조정수당으로 최저임금 수준으로 맞췄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울산대병원분회는 올 임보협에서 하위호봉 철폐를 주요 요구로 내세우고 있다. 조합원 대상 설문조사를 보면 ‘임금 차별을 받는 하위호봉은 폐지되어야 한다’는 질문에 응답자의 94.2%가 그렇다(조금 그렇다 50.7% 포함)고 했다.


응답자 중 13명만이 직접 당사자인 하위호봉 직급이다. 당사자 뿐 아니라 전 직종에서 하위호봉은 철폐해야 한다고 밝힌 것이다. 울산대병원에서 하위호봉 기능직으로 분류되는 노동자는 100여명이 조금 넘는다. 이중 60여명은 (-) 호봉에 있다. 나머지 40여명은 (-) 호봉을 모두 ‘깠거나’ 계약직으로 (-) 호봉 진입을 앞두고 있다.


직무별로는 영양조리사가 가장 많은 51명이고, 병동보조원은 31명이다. 이밖에 환자이송전담, 야간수납 등의 업무를 하위호봉 기능직이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