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의 의미와 과제
지난 23일부터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이 무기한 전면 총파업에 돌입했다. 경북대병원 노동조합 역시 4월 29일 총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2월부터 진행된 2015년 임단협 교섭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총파업 찬반투표에 들어간 두 노동조합은 각각 91.2%, 88.9%의 찬성률로 파업을 가결했다.
이번 총파업으로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은 2013년부터 3년 연속 파업 투쟁을 벌이게 되었으며, 경북대병원 노동조합 역시 2014년 말 35일에 걸친 총파업에 이어 4달 만에 다시 파업 투쟁에 들어가게 되었다.
노동기본권 침해, 의료상업화에 저항하는 국립대병원 노동조합의 투쟁
이번 파업은 다양한 맥락을 띠고 있다. 일차적으로는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계획’에 반대하는 투쟁이다. 2013년 말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들의 과도한 부채 문제를 지적하면서 그 원인이 직원들의 과도한 복리후생에 있다고 주장했다.
기획재정부는 58개의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이에 따라 정상화계획을 이행하도록 했는데, 추진 과정에서 이례적으로 국립대병원을 중점관리대상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국립대병원 노동조합들은 정상화계획이 발표된 직후부터 이에 반대해 왔다. 이들은 정상화계획이 노동권을 침해하는 기재부의 월권이며, 부채의 원인이 정부의 정책 실패와 병원 경영진의 방만 경영에 있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서울대병원과 경북대병원은 정상화계획 이행을 시도하면서 단체협약 해지를 통보하는 한편 직원 과반수 동의를 통해 취업규칙 변경을 시도했다. 노동조합이 정상화계획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강경책을 택한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이를 사후 승인해주었다. 2015년 1월 발표한 정상화계획 이행결과에서, 서울대병원과 경북대병원이 단체협약 해지 통고를 했다는 이유로 정상화계획 이행 시한을 2015년 7월까지 연기해준 것이다. 단체협약 해지 및 취업규칙 일방 변경이라는 폭력적인 방식을 사실상 독려한 것이다.
두 사업장의 사측은 단체협약 해지 과정에서 기 존재하는 단체협약을 위반하였고, 취업규칙 변경 동의를 받는 과정에서 회유·협박 등 불법행위를 광범위하게 저질렀다. 심지어, 사측이 노동조합 탈퇴를 종용하는 부당노동행위를 했음이 밝혀지기도 했다. 공공기관 정상화계획이 노동조합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시야를 좀 더 넓혀보면 이번 파업은 정부의 의료민영화 정책 및 의료기관 상업화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2014년부터 박근혜 정부가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의료민영화 정책에 맞서서 보건의료부문 노동자들은 가장 적극적으로 싸워왔다.
서울대병원과 경북대병원 노동조합 역시 의료민영화 반대를 전면에 내걸고 3차례에 걸쳐 총파업을 벌이는 등 의료민영화 반대에 앞장섰다. 또한 이들 노동조합은 병원 상업화의 중요한 매개인 의사성과급제에 지속적으로 반대해왔고, 서울대병원이 원격의료 사업에 뛰어들기 위해 영리자회사인 헬스커넥트를 설립한 것에 강하게 문제제기했으며, 무분별한 시설확장을 매개로 한 병원 상업화 문제 역시 적극적으로 제기해왔다.
수익성을 중심에 두고 국립대병원의 운영을 평가하는 경영평가에 대한 반대 역시 중요한 투쟁 의제다.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은 경영진이 추진하고 있는 ‘전직원 성과급제’가 병원의 돈벌이 운영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를 철회할 것을 핵심적인 요구로 내걸고 있기도 하다.
국립대병원 노동조합 탄압을 둘러싼 대리전
국립대병원 노동조합의 투쟁을 둘러싼 정세는 녹록지 않다. 단체협약 해지와 취업규칙 일방변경 등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이 개별 병원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따른 것이기보다는 기획재정부가 주도하는 공공기관 정상화계획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사업장 내 노사 대립이라기보다는 정부 정책에 맞서서 서울대병원 노동조합과 경북대병원 노동조합이 대리전을 치르는 상황에 가깝다.
작년부터 노동조합이 문제제기해온 국립대병원 경영평가 역시 기획재정부의 기타 공공기관 경영평가 방침을 교육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한 것이다. 개별 노사관계가 아니라 정부 정책에 노조가 직접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사안인 것이다. 서울대병원 내부 문제인 헬스커넥트 역시 정부가 핵심적인 의료민영화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영리자회사 및 원격의료 사안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투쟁에 대한 지지·연대가 확대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사안은 외견상 사업장 내부의 노사 대립이지만, 국립대병원 운영의 문제가 부당하게 노동자 계급의 책임으로 떠넘겨지는 것을 막아내는 투쟁이고, 헌법에 보장된 노동조합의 권리를 탄압하는 것에 저항하는 투쟁이기도 하다.
투쟁이 노동조합의 패배로 끝난다면 이는 중요한 선례가 되어 공공기관 정상화계획의 이행이 완료되지 않은 다른 국립대병원에서도 단체협약 해지, 취업규칙 일방변경 등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이 확산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노동조합 활동은 상당부분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 공공기관 노동조합의 무력화는 결국 기업실리주의, 노사담합주의의 확대로 이어져 의료민영화 저지투쟁, 의료공공성 확대 투쟁에 전력을 다해 온 공공부문 노동운동의 후퇴로 이어질 것이다.
보건의료노동자의 투쟁을 의료공급체계 혁신을 위한 운동으로 확장해야
한편, 이번 투쟁을 둘러싼 과제는 단순히 노동조합 운동과 관련한 의제로 한정되지 않는다. 의료공급체계 혁신의 주체로서 보건의료부문 노동조합이 차지하고 있는 중요성 때문이다. 보건의료운동의 가장 중요한 과제인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통한 의료접근권 확대에 있어서 의료공급체계 혁신은 그 핵심이다.
건강보험이 4년 연속 흑자를 기록하면서 누적 흑자가 13조에 이르렀으며, 올해 말 15조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위기 여파로 의료이용이 감소한 것이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의료에 대한 필요가 증가하는 것이 정상적임에도 불구하고, 낮은 건강보험 보장성으로 인해 국민들이 필요한 치료를 못 받게 되면서 건강보험 지출의 증가는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 흑자의 원인을 건강 행태 변화, 의료기술 발전, 환경 요인 개선, 건강한 고령화 등에서 찾는 아전인수식 해석을 하면서, 건강보험 재정 흑자 국면을 정부의 건강보험 국고보조를 축소하는 계기로 삼으려 한다.
불황이 장기화되는 국면에서 건강보험 흑자가 발생한 역설적인 상황은 의료정책이 실패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건강보험 급여지출은 억제되는 상황에서 가계의 보건의료비 지출 비중은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 이는 건강보험의 의료비 보장 기능이 저하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건강보험 흑자에 대응하는 올바른 정책 방향은 명확하다. 누적 흑자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보조는 축소가 아니라 오히려 확대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데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가 실질적인 국민의 의료비 부담 완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의료기관의 운영과 진료행태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필수적이다. 병원의 의료행위에 대한 통제 기전이 유명무실한 한국에서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로 인한 의료비 부담 완화가 진료량 증대 및 비급여 비용 인상으로 상쇄되기 때문이다.
실제 경북대병원은 상급병실료 건강보험 보장 확대가 시행된 2014년 9월에 맞추어 1인실 병실료를 평균 8.8% 인상했다. 또한 서울대병원은 2014년 입원환자수가 전년 대비 1.1% 감소했는데, 입원환자 1인당 진료량이 6.4% 증가(2010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여 전체 입원의료수익은 5.2% 증가했다. 의료공급체계 혁신이 없이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의 효과가 얼마든지 무력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그간 보건의료부문 노동조합들은 의료공급체계 혁신과 관련한 구체적인 사례와 쟁점들을 꾸준히 제기하면서 투쟁해왔다.
선택진료제도 및 의사성과급제로 인한 병원상업화 문제, 영리자회사·부대사업 등 실제 현장에서 벌어지는 의료민영화의 양상, 통제되지 않는 병상확대·과잉투자로 인한 상업화 경향 등 수많은 거시적인 쟁점들을 제기했으며, 고가의 비급여 진료를 매개로 지급되는 의사 수당, 비용 절감을 위한 저질 의료재료 사용, 수익 증대를 목표로 하는 과잉검사 강요, 1분진료 문제 등 병원 현장에서 제기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미시적인 쟁점들을 폭로하기도 했다.
당장 현재 서울대병원이 추진하고 있는 전직원 성과급제 문제도 의료기관의 진료행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사업장 내 투쟁만으로 구조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노동조합의 역할은 한계적이지만, 동시에 이러한 역할은 의료공공성을 중심 과제로 두고 활동하는 노동조합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역할이기도 하다. 보건의료운동진영이 당면한 노동조합의 투쟁에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문제의식을 받아 안아 의료공급체계 혁신을 위한 운동을 확장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